[서평]홍천기 _정은궐 장편소설(개인평점 9.2)
하늘의 무늬를 읽고 해독할 수 있지만 앞을 보지 못하는 남자 하람. 그의 눈이 되고자 당당히 경복궁에 입성한 백유화단의 여화공 홍천기.
그들의 운명에 번져 가는 애틋하고 몽환적인 먹선!
"여인에게 관직을 제수해서는 안 된다는 규정을 찾아오라."
경복궁의 터주신 절세 미남 일관, 하람
그는 하늘의 별을 보지 못한다
눈을 떴을 때, 세상은 온통 붉은색이었다. 어린 시절 기우제를 지내다 알 수 없는 사고에 휘말려 맹인이 되었다. 홍천기를 만나면서 그의 눈을 둘러싼 붉은 하늘의 기밀이 조금씩 장막을 걷어 내기 시작한다.
화마가 노리는 천재 화공, 홍천기
그녀는 마음을 아끼지 못한다
사내 못지 않은 대찬 목소리에 호랑이가 먹다가도 뱉어 낼 독기와 고집을 가졌다. 씩씩하고 당찬 여인. 오직 붓과 그림만이 전부였던 20년 화공인생, 하늘에서 떨어진 한 남자를 줍게 된 후 완전히 뒤바뀌게 된다!
아름다움을 찾아 헤매는 풍류객 안평대군, 이용
그는 설렘을 감추지 못한다
누구보다 예술을 사랑하여 훌륭한 그림과 시라면 사족을 못 쓴다. 흥미롭고 유쾌한 사건을 불러들이는 한량. 지금껏 홍천 기만큼 그를 신나게 만든 사람은 없었다. 그녀의 외모, 그림, 모든 것이 마냥 좋기만 하다.
...
"와! 내가 뭐랬어. 살아서 올 거라고 했잖아. 홍 사형은 독해서 호랑이가 먹다가도 뱉어 낸다니까."
...
"나도 말 좀 하자! 나도 물어볼 게 있다고!"
뜬금없는 최원호의 고함 소리에 방 안이 조용해졌다. 다들 어안이 벙벙한 눈으로 최원호를 쳐다보았다.
"어험! 그, 그러니까, 그 사람이 자기 입으로 자기가 안평 대군이라고 그랬다는 것이냐?"
..
혼자? 다행이다. 절대 안평대군일 리가 없다.
"그래서, 네가 안 믿으니까 그 쪽에서는 뭐라더냐?"
"미친놈처럼 계속 웃던데요?"
미친놈처럼? 미친놈처럼... '미친놈'이라면 안평대군에 가까워지는 말이다.
...
미친놈 안견이 뻔뻔하게 걸어오고 있었다.
"야! 너 이 자식!"
최원호가 안견의 멱살을 잡아채려는 순간, 안견이 차분하게 말했다.
"들어가지."
"어? 어."
...
하지만 이번에도 안견이 마치 알고 피하기라도 하듯 먼저 의자에 털썩 앉았다.
"앉지."
멱살을 못 잡았다. 어쩐지 탁자에 앉기도 전에 선수를 뺏긴 기분이 들었다.
...
청지기는 멀찌감치 떨어져서 따랐다. 그의 입에서 끊임없이 한숨이 나왔다. 이 한숨에는 여러 원인들이 작용했다. 첫 번째는 들떠서 춤을 추듯 걷는 안평대군의 체통이 걱정되어서였고, 두 번째는 갑자기 어기게 된 약속의 뒷수습이 걱정되어서였고, 마지막은 그동안 지나가는 아무 여인이나 붙잡고 '홍 화공이냐?'를 물어왔던 안평대군의 정신이 걱정되어서였다.
감상평
사극 로맨스 판타지 소설 '홍천기'
들이대기 대장이지만 전혀 밉지 않은 여주 홍천기를 비롯해서 안평대군 이용, 백유화단 화단주 최원호, 개놈 도화원의 최회사이자 반디의 찐친 최경 등등 매력 만점 다양한 캐릭터들이 두루 등장한다. '해시의 신루' 이후 간만에 유쾌한 사극 로맨스 소설을 접해 너무 신선하고 좋았음.
남주가 맹인이라 자칫 어둡지 않을까 걱정했으나 이건 뭐 앞만 안 보인다 뿐이지 정상인보다 더 출중한 외모에 천재이며, 매력 넘치는 캐릭터였다. 간간히 유튜브로 드라마 홍천기 짤막 영상을 봤는데 소설과는 스토리가 좀 다른듯함 ~ 어쨌든 소설 속 하람의 이미지에 너무 잘 맞는 배우로 남주 섭외.. 안평대군과 최경은 이런 느낌 아니지 않나??ㅎ
하튼 너무 재밌게 읽었으나 마무리가 급 전개된 느낌이라 무척이나 아쉽고 헛헛했다. 스토리 구성으로 봤을 때 보통 3~4권 분량으로 만들어야 할 책을 너무 많은 여지를 남기고 급 종결한게 아닌가 한다.
어쨌든 작가의 글 재주가 좋아 출간하는 족족 대박났나부다. 성균관 유생들의 나날, 규장각 각신들의 나날, 해를 품은 달 이 모두 한 작가의 작품이었다니 ~